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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교사상 on 墨談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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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Recent content in 비교사상 on 墨談齋</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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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병을 본 사람과 사람을 본 사람</title>
      <link>https://mukdamjae.com/posts/2026-03-27-disease-or-person/</link>
      <pubDate>Fri, 27 Mar 2026 12: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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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같은 불만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이야기다.&lt;/p&gt;&#xA;&lt;p&gt;18세기 동아시아에서,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이론 체계에 대한 불만은 일본과 조선 양쪽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에도시대 일본의 요시마스 토도는 상한론이라는 고전에서 음(陰)·양(陽)·허(虛)·실(實)이라는 글자 자체를 지워버렸다. 조선 말기의 이제마는 영추·소문이라는 경전을 &amp;ldquo;황제를 가탁하여 사람을 현혹한 것&amp;quot;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둘 다 기존 체계가 사변적이라고 보았다.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lt;/p&gt;&#xA;&lt;p&gt;여기까지는 같다. 갈라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lt;/p&gt;&#xA;&lt;hr&gt;&#xA;&lt;p&gt;토도는 만병일독설(萬病一毒說)이라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이론을 세웠다. 모든 병은 하나의 독에서 생긴다. 병의 종류가 다른 것은 원인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독이 몸의 다른 부위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약 역시 독이다. 독으로 독을 공격해서 독이 빠져나가면 몸이 낫는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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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국이 망하는 방식</title>
      <link>https://mukdamjae.com/posts/2026-03-26-rome-christianity-america/</link>
      <pubDate>Thu, 26 Mar 2026 18: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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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회심이 아니라 계산이었다.&lt;/p&gt;&#xA;&lt;p&gt;러셀에 따르면, 당시 로마 병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도였다. 기독교도는 전체 인구에서는 소수였지만 단일 조직으로 뭉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세력이었다. 대항할 집단이 없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조직화된 집단의 지지 없이는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니케아 공의회를 직접 소집하여 교회의 내부 분열까지 정리했다. 교회의 통일된 조직을 국가 통치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동기였다.&lt;/p&gt;&#xA;&lt;p&gt;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든 뒤에는 의도와 결과가 역전된다. 테살로니카에서 7천 명을 학살한 황제가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 공개 참회를 강제당한 사건은, 종교적 권위가 세속 권력을 굴복시킨 상징적 장면이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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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틀이 있는 자와 틀이 없는 자</title>
      <link>https://mukdamjae.com/posts/2026-03-26-edo-kogaku-and-jema/</link>
      <pubDate>Thu, 26 Mar 2026 12: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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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유학자가 유학을 하고, 의사가 의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lt;/p&gt;&#xA;&lt;p&gt;에도시대 일본에서 오규 소라이는 유학의 영역에서 주자학을 해체했고, 요시마스 토도라는 의사는 의학의 영역에서 음양오행을 걷어냈다. 둘은 거의 같은 시대에, 같은 지적 풍토에서, 같은 방향의 작업을 했다. 주자학이라는 거대한 통합 세계관이 균열을 일으켰을 때, 유학자는 유학 안에서, 의사는 의학 안에서 각자 그 균열에 대응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lt;/p&gt;&#xA;&lt;p&gt;마루야마 마사오는 이 전환을 &amp;lsquo;자연에서 작위로&amp;rsquo;라고 불렀다. 주자학에서 세상의 질서는 천리(天理)가 스스로 드러난 자연적인 것이다. 소라이는 이를 부정했다. 제도란 선왕이 만든 것이지,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니다. 토도도 같은 방향으로 갔다. 음양오행이라는 이론적 틀을 걷어내고, 환자의 배를 직접 만져서 진단하는 복진(腹診)이라는 경험적 방법을 세웠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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