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談齋

두 개의 모세 — 폴 존슨은 프로이트를 공정하게 읽었는가

· 墨談齋

대조 텍스트: Paul Johnson, A History of the Jews (1987) / Sigmund Freud, Moses and Monotheism (1939), Standard Edition vol.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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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문장짜리 판결
  2. 원문 대조 ① — 프로이트는 마네토 위에 서 있는가
  3. 원문 대조 ② — ‘이집트 전면 거부’는 프로이트에 대한 반론이 되는가
  4. 존슨이 옳은 지점 — 방법론
  5. 존슨 자신의 약점
  6. 아이러니 — 마네토와 아케나텐은 같은 기억일 수 있다
  7. 결론
  8. 원문 위치와 검증 메모

1. 한 문장짜리 판결

존슨이 프로이트의 모세론에 할애한 분량은 사실상 한 문장이다. 마네토가 퍼뜨린 ‘모세는 이집트인, 헬리오폴리스의 배교 사제’라는 전설을 소개하면서, 이것이 고대 반유대주의의 원형 비방(Ur-libel)이 되었고 마르크스의 편지에까지 재생산되었다고 쓴 직후다. 그리고 이렇게 잇는다. 반유대주의자가 결코 아닌 프로이트가 마지막 저작을 바로 이 마네토의 이야기 위에 세웠고, 여기에 아케나텐 태양 유일신 기원설이라는 흔한 추측과 “much pseudo-factual nonsense of his own"을 보탰다는 것.

주석 82번은 『Moses and Monotheism (London 1939)』 한 줄뿐이다. 쪽수가 없다. 판결은 있는데 증거 목록이 없다.

존슨의 논지는 세 겹이다.

  • 계보: 프로이트는 마네토 계열(반유대주의 원형 서사)의 후계다.
  • 내용: 아케나텐 기원설은 근거 없는 추측이다.
  • 반론: 모세의 사상은 “certainly not Egypt"에서 왔다. 출애굽은 이집트적인 모든 것의 전면 거부였고, 이집트 문명은 “very ancient and very childish"였으며 이스라엘의 탈출은 성숙을 향한 시도였다.

2. 원문 대조 ① — 프로이트는 마네토 위에 서 있는가

아니다. 이것이 존슨 비판의 가장 큰 사실 오류다.

프로이트의 출발점은 세 가지다. 첫째, 브레스테드(J. H. Breasted, The Dawn of Conscience, 1934)의 어원론. ‘Mose’는 ‘아이’를 뜻하는 이집트어이며 Ptah-mose, Amen-mose 같은 신명 결합형의 축약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인용한 뒤, 이름이 이집트어라는 것을 다들 인정하면서 왜 아무도 ‘그 사람이 이집트인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둘째, 랑크의 영웅 출생신화 분석을 뒤집어 적용한 것(기아 신화의 방향이 다른 영웅들과 반대라는 점). 셋째, 젤린(E. Sellin, 1922)의 호세아서 해석, 즉 모세가 반역한 백성에게 살해되었다는 전승.

표준판 서지에서 마네토는 단 한 번, 105쪽에 나온다. 그것도 본문이 아닌 각주다. 내용은 이렇다. 유대인을 ‘나병환자’라 부른 고대의 비방(마네토 참조)은 “no doubt has the sense of a projection” — 즉 ‘저들이 우리를 나병환자 대하듯 멀리한다’는 감정을 뒤집어씌운 것이라는 해석이다.

프로이트는 마네토를 근거로 쓴 것이 아니라 반유대주의 텍스트의 표본으로 분석했다. 존슨이 프로이트를 마네토의 후계 계보에 넣은 것은 원문과 정반대다. ‘모세 이집트인설’이라는 결론이 같다는 이유로 출처까지 같다고 처리한 것이다.

3. 원문 대조 ② — ‘이집트 전면 거부’는 프로이트에 대한 반론이 되는가

되지 않는다. 존슨은 모세 종교가 이집트의 다신·주술·사후세계 집착을 거부했다는 점을 프로이트 반박의 근거로 쓴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아케나텐 묘사를 보면 바로 그 내용이다. 아톤 종교는 주술적 사고를 일체 배격했고, 이집트인이 가장 아끼던 사후세계의 환상을 거부했으며, 다른 신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기만이라 선언했다. 그리고 아케나텐 사후 사제 집단의 복수로 이 종교는 말살되었다.

즉 프로이트의 이집트는 이집트가 스스로 파괴한 이단 이집트다. 프로이트의 모세도 이집트를 거부한 사람이다. 정통 이집트에게 패배한 아마르나 잔당으로서. 존슨과 프로이트의 실제 쟁점은 ‘모세가 이집트를 거부했는가’가 아니라 ‘그 거부가 이집트 안에서 나왔는가 밖에서 나왔는가’다. 존슨은 이 구분을 하지 않고 이집트를 단일 덩어리로 놓아 반박을 성립시켰다.

4. 존슨이 옳은 지점 — 방법론

그렇다고 존슨의 ‘pseudo-factual’이 근거 없는 욕설은 아니다. 방법론 차원에서는 정확하다. 그리고 그 증거는 프로이트 자신이 제공한다.

  • 선택적 채택의 자인. 3부 서두에서 프로이트는 자료 중 “쓸모 있어 보이는 것"은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리며 심리학적 개연성에 따라 조각을 잇는 방식이 진리의 확실성을 줄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정당화는 오직 ‘결과에 대한 호소’다.
  • 끊어진 실을 이어붙이기. 2부에서 에두아르트 마이어의 연구(카데스·미디안의 모세는 주술사이자 야훼의 대리인)를 따라가다가 프로이트는 이집트인 모세 가설의 실이 “두 번째로” 끊어졌다고 쓴다. 그 직후 젤린의 살해설이 “예기치 않은 탈출구"로 등장한다. 그는 젤린의 해석이 옳은지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 가설을 “빌려온다.”
  • 두 명의 모세. 모순되는 자료는 모세 두 사람(이집트인 모세 / 미디안의 모세)의 전승으로 나눠 해소한다. 설명의 유연성은 높아지지만, 두 인물의 실재를 독립적으로 검증하기는 어려워진다.
  • 스스로의 진단. 프로이트는 이 책이 자기 비판적 감각에는 “a dancer balancing on the tip of one toe"처럼 보인다고 썼다. 기아 신화 해석과 젤린의 살해설이 없었다면 책 전체가 쓰이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젤린의 호세아 해석은 출간 당시부터 약한 고리로 지목되었다. 1939년 『Virginia Quarterly Review』 서평은 이 독법을 “dubious if not fantastic"이라 평했고, 현대의 평자들도 근거가 빈약한 논증으로 본다. 이집트어·히브리어 학자 아브라함 야후다는 1940년, 젤린이 라이프치히 동양학자 대회에서 자기 주장을 철회했다고 공개 발언했다. 다만 이 철회는 야후다의 증언으로만 전해지며, 젤린 측 1차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아스만도 2018년 논문에서 역사적 모세에 관한 프로이트의 주장이 성서 본문과 성서 외 자료 어디에서도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이름의 언어가 출신을 증명한다는 추론도 성립하지 않는다(프로이트 자신이 디즈레일리·샤미소를 예로 들었지만, 지배 문화권의 이름을 쓰는 소수민족 사례는 그 반례다). 역사적 재구성으로서 『모세와 유일신교』는 사실로 입증되지 않은 추론의 연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이 약점은 저작 전체의 정신분석적 문제 설정과 구별해서 평가해야 한다.

5. 존슨 자신의 약점

존슨의 반론도 같은 수준의 검증을 견디지 못한다.

  • “certainly not Egypt” 는 근거 제시 없는 단정이다. 모세 사상의 출처를 ‘이집트가 아님’으로 확정할 자료는 프로이트의 ‘이집트임’만큼이나 없다.
  • “very ancient and very childish” 라는 이집트 문명 평가는 학술적 서술이 아니라 신학적 서사다. 이집트인은 일반 개념을 거의 파악하지 못했고 누적적 시간 감각이 없었다는 서술은 이집트학의 일반적 평가와 거리가 멀다.
  • 파라오 노예제를 히틀러의 노동수용소·홀로코스트의 “distant adumbration"으로 놓은 비유는 출애굽을 역사적 사건으로 전제한 위에서만 성립한다.

존슨의 구도는 결국 ‘이스라엘의 유일신 발견은 인류사 최대의 전환점’이라는 결론을 먼저 세우고 이집트를 그 배경막으로 낮추는 구조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의 결론(억압된 것의 회귀)을 먼저 세우고 역사를 끼워 맞춘 것과 형식이 같다.

6. 아이러니 — 마네토와 아케나텐은 같은 기억일 수 있다

존슨은 프로이트의 두 ‘오류’로 마네토 계보와 아케나텐 추측을 나열했다. 그런데 이집트학자 얀 아스만(Moses the Egyptian, Harvard UP, 1997)은 이 둘을 연결해서 읽었다. 그에 따르면 마네토의 ‘나병환자를 이끈 배교 사제 오사르시프’ 이야기는 단일한 기원을 갖지 않는다. 이집트사의 두 외상, 즉 아케나텐의 종교혁명(우상 금지와 아톤 유일신 강요)과 셈계 힉소스의 지배가 하나의 민간 기억으로 뒤섞인 결과라는 것이다(같은 책 p.30 전후). 지워진 이단과 이민족 지배가 ‘오염된 이방인’ 서사로 압축되어 돌아왔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을 하나의 문화적 기억 가설로 받아들이면, 존슨이 ‘반유대주의 원형 비방’으로 규정한 마네토 서사 안에 프로이트가 주목한 아마르나의 흔적이 섞여 있게 된다. 존슨이 분리해 단죄한 두 요소가 같은 기억의 층위에 놓이는 셈이다. 아스만 자신도 2000년 논문(“Monotheismus und Ikonoklasmus als politische Theologie”)에서 프로이트가 『모세라는 남자』에서 내세운 억압(Verdrängung) 개념과 아마르나에 대한 ‘잠재적 기억’을 나란히 논한다. 다만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론의 틀에서 접근하며, 프로이트의 역사적 결론(모세=아케나텐 측근, 모세 살해)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아스만의 ‘아마르나 단독 기원설’로 단순화해서는 안 되고, 힉소스 기억과의 복합이라는 점이 그의 논지다.

7. 결론

존슨은 프로이트의 결론을 읽었고 구조는 읽지 않았다. 『모세와 유일신교』는 모세 전기가 아니라 ‘전승이 어떻게 억압되었다가 강박적 힘으로 회귀하는가’에 대한 이론서이고, 모세는 그 사례다. 이 책을 고고학으로 공격하면 맞히긴 하지만 과녁의 가장자리를 맞힌다. 과녁 한가운데, 즉 역사를 신경증 증상 모델로 읽는 방법 자체에 대한 비판은 존슨에게 없다.

반대로 프로이트는 존슨이 지적한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1938년 런던 서문에서 그는 결론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은 25년 전 『토템과 터부』 이래 흔들린 적 없으나, 유대 유일신교라는 이 사례로 그것을 증명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썼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신과 이론에 대한 확신을 분리한 것이다. 존슨은 이 분리를 보지 못하고 둘을 함께 ’nonsense’로 묶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존슨의 이 한 문장은 돌출 발언이 아니다. 같은 책 Part Five에서 존슨은 프로이트주의가 마르크스주의처럼 “in some ways” 미신 체계라면 그것은 놀랍지 않다고, 같은 배경에서 나왔기 때문이며 그 안에서 서구 과학은 실체가 아니라 겉칠이라고 쓴다. 조건문의 형식을 빌렸지만 판정은 분명하다. 프로이트는 종교 창시자이자 이단 교주(heresiarch)이며, 아들러와 융의 축출은 헤렘(파문)과 이단 재판으로, 증례들은 과학 문서가 아닌 단편소설로 서술된다. 그리고 존슨은 프로이트주의의 유대적 성격이 하시딤적이 아니라 “Mosaic"하다고 결론짓는다. 칭찬이 아니다. 관용과 다원적 지도라는 또 다른 유대 전통을 거부하고, 진리를 독점하며, 이탈자를 파문하는 입법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세론에 대한 판결은 텍스트 검토의 결과라기보다 프로이트라는 인물에 대한 선행 판단의 연장으로 읽힌다. 존슨의 눈에 프로이트는 모세를 이집트인으로 만든 사람이자 동시에 스스로 모세가 되려 한 사람이었다. 프로이트는 책 첫 문장에서 한 민족에게서 가장 위대한 아들을 빼앗는 일을, 그것도 그 민족의 일원이 하는 일을 가볍게 할 수 없다고 썼다. 존슨은 그 문장을 읽었다면 프로이트가 무엇을 걸고 이 책을 썼는지 보았을 것이다. 인물에 대한 판단이 먼저 서고 원문 확인은 생략되었다는 것, 그것이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존슨 독해의 한계다.


원문 위치와 검증 메모

  • Johnson, A History of the Jews, Part One ‘Israelites’ — 마네토·프로이트 언급(주 80–82), 이집트 거부론(주 83 전후); Part Five ‘Emancipation’ — 프로이트주의 평가: 미신 체계·종교 창시자·“Mosaic” 성격·파문(주 216–231)
  • Freud, SE 23: 7–9(이름의 어원, 브레스테드), 35–37(마이어·젤린, ‘실이 두 번째로 끊어졌다’), 58–60(런던 서문, ‘dancer’ 비유, 아톤 종교 요약), 104–105(선택적 채택 자인, 마네토 각주)
  • Assmann, J., Moses the Egyptian: The Memory of Egypt in Western Monotheism (Harvard UP, 1997) — 원서 미대조. 2차 자료로 요지 확인(마네토 서사 = 아마르나+힉소스 복합 기억, p.30)
  • 젤린 수용사: VQR 서평(1939); JTA 1940.12.20 야후다 발언 보도(라이프치히 동양학자 대회 철회설, 젤린 측 1차 기록 미확인); E. Ludwig, Der entzauberte Freud (1946) 야후다 인용; Assmann, “Freud, Sellin, and the Murder of Moses”, in Sharvit & Feldman (eds.), Freud and Monotheism (2018), 138–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