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談齋

광야 없는 푸에르 — 잡스, 조던, 코비, 그리고 머스크

· 墨談齋

앞 글에서 일론 머스크를 푸에르 에테르누스의 현대적 표본으로 읽었다. 그러나 모든 푸에르가 같은 길을 걷지는 않는다. 어떤 푸에르는 세넥스가 되고, 어떤 푸에르는 평생 화난 푸에르로 끝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네 사람을 나란히 놓는다. 스티브 잡스,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일론 머스크.

잡스와 조던은 푸에르에서 출발해 세넥스로 건너간 자들이다. 코비와 머스크는 푸에르를 모방하다가 그림자에 갇힌 자들이다. 두 부류를 가른 것은 재능도 노력도 아니다. 광야였다.

광야의 12년

잡스는 1985년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다. 30세였다. 그가 돌아온 것은 1997년, 42세였다. 그 사이 12년을 그는 NeXT라는 무명의 워크스테이션 회사와 픽사라는 적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보냈다. 미디어는 그를 거의 잊었다. 실리콘밸리는 그를 한물간 인물로 분류했다. 1996년의 잡스는 1985년의 잡스가 아니었다.

이 12년이 무엇이었는지 융의 언어로 말하면 개성화의 통과의례다. 첫 결혼 실패와 화해, 딸 리사와의 관계 회복 시도, 픽사에서의 패배 학습, 죽음 가까이 가본 경험. 그가 1997년 애플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본 것은 같은 잡스가 아니었다. 검은 터틀넥과 키노트는 같았지만, 이제 그것은 의식적 연기였다. 페르소나와 자기를 분리할 수 있는 자만이 페르소나를 입을 수 있다.

조던에게도 광야가 있었다. 1993년 첫 은퇴와 야구 도전이 그것이다. 농구의 신이 마이너리그 야구장에서 굴욕을 견뎠다. 사람들은 비웃었고, 본인은 침묵했다. 1995년 NBA로 돌아온 조던은 다른 사람이었다. 1차 전성기의 조던이 본능과 신체로 이긴 자였다면, 2차 전성기의 조던은 머리와 의지로 이긴 자였다. 두 번째 3연패의 조던은 첫 번째 3연패의 조던보다 무서웠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광야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자기 정체성의 외피가 벗겨지는 시간이다. 외부의 응시가 사라지고, 자기 안의 그림자와 대면하게 되는 시간이다. 잡스의 NeXT, 조던의 야구.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통과했다.

모방의 끝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기가 조던을 모방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조던의 페이드어웨이 동작을 그대로 복제했고, 혀 내미는 습관까지 따라 했으며, 트래쉬 토크의 운율마저 학습했다. 백넘버 24번은 조던의 23번에 1을 더한 것이었다. 5번 우승했고, 평생 한 팀에 헌신했고, 맘바 멘탈리티라는 이름의 강박으로 자기를 갈아 넣었다.

그러나 코비는 끝까지 코비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항상 말했다. 조던이라면 어땠을까. 5번 우승 위에 6번 우승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41득점 위에 50득점의 그림자가 있었다. 모방의 대상이 살아 있을 때, 모방자는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라르가 모방 욕망에 대해 평생 쓴 것이 이 한 줄이다.

코비는 41세에 헬리콥터 사고로 죽었다. 농구를 떠나 영화와 창작으로 이행하던 시기였다. 그가 만약 60대까지 살아 농구 너머의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모른다. 그에게는 광야가 오지 않았다. 모방의 강도가 너무 깊어 광야조차 모방의 연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잡스를 모방한 정도는 코비가 조던을 모방한 정도와 다르지 않다. 검은 옷과 키노트, 창업자의 축출과 복귀 서사, 세상을 바꾸겠다는 메시아적 자기 선언. 그러나 잡스가 NeXT 시기에 통과한 내면의 작업은 머스크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모방은 외형을 복제하지만 내면은 복제하지 못한다. 세넥스가 되는 길은 외형을 따라가는 것으로 열리지 않는다.

광야의 부재

머스크에게 광야가 없는 것은 그가 약해서가 아니다. 너무 강해서다. 페이팔 매각 이후 단 한 번도 무명이었던 적이 없다. 테슬라의 위기, 스페이스X의 폭발, 트위터 인수의 혼란이 있었지만, 그는 항상 스포트라이트 안에 있었다. 외부의 응시가 사라진 적이 없다.

융의 셀프(Self)는 외부 거울이 사라질 때 형성된다. 자기를 보는 시선이 자기 자신뿐일 때, 인격의 중심이 만들어진다. 트위터 2억 팔로워는 2억 개의 거울이다. 매일 자기 모습을 외부에서 확인받는 자는 내면의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 머스크는 거울 과잉의 시대가 만든 첫 번째 영구 푸에르일지도 모른다.

자녀의 거부라는 사건이 있었다. 융이라면 이것을 변환의 초대장이라 불렀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거부는 그림자 직면의 마지막 기회다. 그러나 머스크는 그것을 외부화했다. woke가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말했다. 분노의 화살이 자기 안으로 향하지 못하고 바깥의 적을 만들었을 때, 변환의 문은 닫혔다.

조던에게는 야구가 있었다. 잡스에게는 NeXT가 있었다. 코비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머스크에게는 침묵의 12년이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너무 많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운

이 네 사람의 비교가 누군가의 우열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광야를 통과한 자는 위대하고 통과하지 못한 자는 미숙하다는 도식은 너무 쉽다. 광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의 문제다. 잡스에게 광야가 온 것은 그가 1985년 졌기 때문이고, 조던에게 광야가 온 것은 1993년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코비와 머스크에게 광야가 오지 않은 것은 그들의 성공이 끊긴 적 없기 때문이다.

성공이 너무 길게 이어지는 자에게 광야는 끝내 오지 않는다. 그리고 광야 없는 푸에르는 영원히 푸에르로 남는다. 이것을 비극이라 부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격(格)이라 부를 수도 있다. 결과는 같다.

우리가 이 네 사람의 궤적에서 배우는 것은 변환의 방법이 아니다. 변환이 우리 의지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야가 우리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이고, 광야가 왔을 때 등을 돌리지 않는 것이 그다음 전부다.


이 글을 1편과 함께 두 사람의 대화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