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談齋

견딤은 굴종인가

· 墨談齋

앞선 글에서 나는 조용한 말 하나로 끝을 맺었다. 벗어남이 아니라 견딤이라고. 문 없는 방에서 무르게 남아 있는 일이라고. 그것이 당연히 일종의 지혜인 양, 거기에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그 말을 가만두지 않을 독자가 한 사람 있다. 그는 그것을 약자의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라 부를 것이다.

니체가 그것의 이름을 붙였다. 사람은 자기 자리를 떠날 수 없을 때, 머무름을 미덕이라 부르는 법을 배운다. 치장된 무력은 인내가 되고, 치장된 굴종은 겸손이 된다. 그는 이것을 노예도덕이라 불렀다. 자기 분수 안에서 견디라는 권고는, 그에게 지혜가 아니다. 웃는 법을 익힌 르상티망이다.

그의 칼은 하나가 아니다. 금욕적 이상이란, 그가 보기엔 자기를 향해 돌려진 힘이다. 밖으로 발산되지 못한 충동이 안으로 굽어 제 주인을 갉아먹는다. 사제는 고통받는 자에게 그 원인이 네 죄에 있다고 설득하고, 상처를 약이라며 처방하는 자다. 이렇게 보면 “잊지도 말고 억지로 키우지도 말라"는 구절은, 솟아오르려는 무언가를 내리누르는 손처럼 보인다. 의지의 자기 거세. 그리고 세 번째 칼이 가장 날카롭다. 그가 말한 마지막 인간은 자기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잃고 안락과 고통 없는 삶만을 구하며, 굳어버린 채 그 굳음을 역사의 정점이라 부르는 자다. 가장 위험한 짐승은 길들여진 짐승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앞선 글의 문 없는 방은 피고석에 선다. 벽을 부수는 대신 눈구멍이나 닦으라는 것 — 그것은 이미 진 자의 내면 도피가 아닌가.

그러나 눈구멍을 말한 19세기 조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유죄가 되지 않는다. 첫 번째 칼에 그는 답한다.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는 약속은 단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고. 제 자리를 스스로 짓는다는 그 사람은 아무도 만난 적 없는 아름다운 형상이라고. 사람은 하늘과 세상의 그물 안에서 나고 그 안에서 죽는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패배가 아니라, 현실을 더 정직하게 읽는 일이다.

두 번째 칼에 대한 그의 답은 더 낯설다. 그가 동의하고, 그런 다음 그것을 돌려세우기 때문이다. 그 역시 단단하게 굳은 마음을 경멸했다. 마음을 억지로 굳혀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 앎을 차단해 아무것도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 — 그는 이것을 사람을 망치는 함정이라 불렀다. 니체가 금욕적 이상에 붙였을 말과 거의 같은 말로.

다른 것은 힘을 어디로 두느냐다. 니체에게 힘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막히면 안으로 꺾여 병이 된다. 그에게는 방출이 건강이고 누름이 거세다. 조선 사람에게 힘은 나가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정리가 건강이고 흩어짐이 병이다. 그러니 그의 “억지로 키우지 말라"는 솟는 것을 내리누르는 손이 아니다. 의지가 돌처럼 응고되는 것에 대한 거부인 동시에, 사방으로 새는 것에 대한 단속이다. 그가 처방한 것은 줄어든 삶이 아니라 더 많은 삶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헤아리고, 분별하고, 흩어진 마음을 되찾는 일.

그래서 같은 견딤이라도 두 사람의 것은 다른 종류다. 니체에게 견딤은 도덕의 문제다. 누구의 미덕인가, 약자의 자기기만은 아닌가. 조선 사람에게 견딤은 기술의 문제다. 어떻게 굳지도 흩어지지도 않는가. 한쪽은 견딤을 심판하고, 다른 쪽은 견딤을 설계한다. 그에게 견딤은 멈춤이 아니라, 경화를 거부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두 적은 한 땅에서 만난다. 둘은 같은 최후의 위험을 지목한다. 경화다. 니체의 마지막 인간과 조선 사람의 단단해진 마음은, 두 개의 조명 아래 놓인 같은 경화다. 둘은 병에 합의한다. 갈리는 것은 처방뿐이다. 하나는 場을 부수고 새 場을 명령하라 하고, 다른 하나는 場을 벗어날 수 없으니 그 안에서 굳지 말라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나는 모른다. 니체가 옳다면, 견디라는 권고는 노예의 위안이고 눈구멍은 감방의 창이다. 조선 사람이 옳다면, 그 넘어서는 인간은 한 번도 검증된 적 없는 신화이고 제 자리를 지으라는 명령은 벽에 그려진 문이다. 나는 여기서 둘 사이를 판정하지 못한다. 다만 이것만은 눈에 띈다. 하나는 문 너머를, 아무도 돌아온 적 없는 나라를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이 방의 바닥을, 그리고 내 손에 든 걸레를 가리킨다. 문은 명령이고, 바닥은 작업이다. 오늘 밤 나는 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닥은, 닦을 수 있다.